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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송이 백합꽃을 피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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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4-04-05 | 조회조회수 : 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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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절을 한 주 앞두고 고난주간 새벽기도회가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라는 주제로 십자가 앞에서 나를 내려놓고 순종할 때, 부활의 거룩한 옷을 입고 다시 믿음으로, 은혜로, 사랑으로, 복음으로, 헌신으로, 그리고 희망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고난주간이고 또 주중이기에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헤어지지만, 교회에 남아 하루 종일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목회자들은 어쩔 수 없이 교회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어야 했습니다. 평소에 자주 가던 교회 옆 맥도날드가 공사 중이어서 판네라 브레드라는 식당을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패스트푸드점보다는 조금은 더 고급스러운 판네라 브레드에서 향 좋은 커피와 신선한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로 아침부터 호사를 누리고 나오는 데 바로 옆에 있는 마켓 입구에 놓인 꽃과 작은 플랜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활주일에 제단에 놓을 백합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관심이 생겨서 보니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을 잔뜩 매단 백합 화분이 아침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백합을 사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성일 목사님께 물었더니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사다 놓기로 했다고 답하셔서 그냥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심방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형 마켓에서 백합을 본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들렸습니다. 화분만 컸지, 꽃망울은 몇 개 달리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본 가격보다 두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다시 판네라 브레드에서 아침을 했습니다. 나오는 길에 어제 본 백합이 생각나서 둘러보다가 점원에게 꽃망울이 활짝 피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습니다. 점원은 한 일주일은 지나야 꽃이 필 것이라고 퉁명하게 대답하고는 가버렸습니다. 나흘 후면 부활주일인데, 그날 사서 가지고 오더라도 꽃이 피려면 일주일이나 걸리면 너무 늦을 것 같았습니다. 


    옆에 있던 이성일 목사님께서 그럼 하루라도 빨리 백합을 사야 한다고 하면서 서둘러 구입했습니다. 그나마 꽃망울을 터트릴 기미가 있는 것을 골라 왔는데도, 한두 개 빼고는 마음이 토라진 아이처럼 입을 앙다물고 있었습니다. 백합을 사가지고 와서 교회에서 가장 따뜻하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기로 하고 어디가 좋을지 찾아다녔습니다. 


    겨우 구해 온 백합을 밖에 두자니 누가 가져갈 것 같았습니다. 실내에 두자니 볕이 잘 드는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본당 뒷방 창가에 가지런히 놓고는 백합 관리자로 유년주일학교를 맡아 사역하시는 박성진 전도사님을 임명했습니다. 박 전도사님은 지난달부터 교회에 마련된 기숙 시설에서 기거하시기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살필 수 있다고 해서 드린 부탁이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본당에 들어서자마자 백합부터 찾았습니다. 밤새 따뜻하게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려고 했는데 백합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기 전에 이성일 목사님께 백합의 행방을 물었지만, 모르기는 이성일 목사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중에야 박 전도사님이 낮에는 볕이 잘 드는 곳으로 백합을 옮겼다가 저녁에 채플로 다시 옮겨 놓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 전도사님은 백합을 피우기 위해 아침마다 물을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옮기면서 백합 피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처음 사 올 때 두세 송이 꽃만 있었는데, 하루 자고 나니 백합꽃이 6송이로 늘었고, 어제는 백합꽃 10송이가 활짝 피었습니다. 


    박 전도사님이 활짝 핀 백합꽃 사진을 제게 보내면서 ‘백합 재배 일지’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 메시지에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백합이 햇빛을 받고 꽃을 피우는 줄 알았더니, 전도사님의 사랑을 받고 피우는 것이었네요.’ 그렇습니다. 한 송이 백합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딛고 피어난 영원의 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위해서 피어난 생명의 꽃입니다. 부활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피어난 은혜의 꽃입니다. 그 부활을 상징하는 백합 향기 가득한 예배당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부활주일 예배를 여러분과 함께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부활의 영광과 소망이 여러분의 삶 속에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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