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기억하시는 하나님과 망각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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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 자동차를 타고 집을 떠나 근처 야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 중에 갑자기 주차장 문을 닫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건망증이 심하구나” 스스로 푸념하면서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장 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망각은 제게 드물지 않은 현상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의 목회 사역에서 은퇴한 뒤, 지인들의 도움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동역하신 많은 성도와 수십 년 동안 있었던 선한 추억, 지난날의 교훈과 보람과 깨달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에서 기억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억이 없으면 신앙이 유지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기억, 나의 실수와 실패의 기억, 시공간의 환경 속에서 체험한 유익하고 즐거운 기억이 없으면, 어떻게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나의 오해와 고정관념으로 왜곡된 기억을 가진다면 문제입니다. 이기적 의도나 상처 때문에 기억을 과장 혹은 축소하는 소위 “기억의 남용”(the abuse of memory)에 빠진다면 문제입니다. 오해가 고착되어 기억이 망가지면, 그것은 자아 정체성과 역사의식이 왜곡됩니다.
기억의 왜곡, 과장과 의도적인 망각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지혜자 솔로몬 왕은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겸손하게 행하며,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는 권면입니다. “기억한다”는 말은 히브리어의 ‘자카르’(zakar)인데, 이는 신앙의 선배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 사용했던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인지적인 차원의 기억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의 자신을 기억하여 행동해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신자의 구원을 내포합니다.
절망적 상황에서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려 응답받은 신앙의 걸출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삼손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zakar)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 삼손은 이 기도를 통해서 블레셋을 이깁니다.
둘째는 다윗입니다. 그는 늪과 같은 고난 속에서 구원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zakar)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zakar)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시 25:7). 다윗은 환란에서 벗어나 원만한 환경에 이릅니다.
셋째로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는 아시리아와 전쟁 중에 죽을병에 걸려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zakar)”(사 38:3).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선행과 눈물을 기억하시고 그를 치유하시고 전쟁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하도록 인도합니다.
페르시아 시대의 느헤미야 총독은 이같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선행을 한 후에 자신을 기억하여(zakar) 복 주시길 간구합니다(느 5:19, 13:14, 22, 31). 그는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 성벽을 52일만에 건축하고, 민족과 신앙을 위해 섬긴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망각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종종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돌에 새기고 우리의 죄악을 그리스도의 피에 새길 것”입니다. 2025년을 지내며 선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유지하고, 악하고 괴로운 기억은 용서하고 풀어 치유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주께 드립시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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