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세상읽기] 실험실을 탈출한 양자컴퓨터, 이제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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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인공지능(AI)' 이야기로 시끄럽다. 챗GPT가 쏘아 올린 공은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AI 모델이 쏟아져 나오는 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안 그래도 기술의 발전 속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인데, 여기에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라는 거대한 파도가 또 한 번 덮쳤다. 하지만 이번 파도는 결이 다르다. 작년까지의 양자컴퓨터 뉴스가 "얼마나 빠른가"를 자랑하는 '신기록 경진대회'였다면, 지난 12일 구글이 던진 메시지는 "이제 이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전'의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약 1년 전인 지난해 12월, 구글은 양자 칩 '윌로(Willow)'를 공개하며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슈퍼컴퓨터로 우주의 나이보다 긴 '10의 25승 년(1000조 년 이상)'이 걸릴 계산을 단 5분 만에 해치우고,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오류가 줄어드는 '마법'을 증명해 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윌로는 구글의 차가운 실험실 냉동기 속에 갇혀 있는 '신비로운 존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5년 12월 12일, 구글은 마침내 그 빗장을 풀었다. 퀀텀 인사이더(Quantum Insider) 사이트는 구글이 영국 정부와 손잡고 '윌로' 칩을 외부 연구자들에게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연구 협력을 넘어선다.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진 구글이, 기초 과학과 국책 연구에 강한 영국에 "이 압도적인 계산 능력을 줄 테니, 인류를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바야흐로 양자컴퓨터가 슈퍼컴을 이기는 단계를 넘어 '양자 유용성(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명확하다. 바로 '실제 활용 사례'의 발굴이다. 구글은 영국 국립 양자 컴퓨팅 센터(NQCC)를 통해 영국의 과학자들이 윌로에 직접 접속하여 실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엄두도 못 냈던 화학 반응 시뮬레이션,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신약 후보 물질 발굴, 그리고 차세대 배터리용 신소재 개발 등 '진짜 문제'들이 실험대 위에 오른다. 구글과 NQCC 전문가들은 연구 제안서를 검토해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가장 높은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지원하게 된다.
영국 정부의 행보 또한 기민하다. 그들은 이미 양자 기술을 국가의 명운을 건 전략 자산으로 보고 있다. 6억 7천만 파운드(약 8억 9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산업 전략에 쏟아부으며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45년까지 영국 경제에 110억 파운드(약 147억 달러)의 가치를 더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영국에게 이번 구글과의 협력은 이 거대한 목표를 실현할 가장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지금 '아이폰 모먼트'와 유사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았을 때, 그것이 단순히 '전화가 되는 기계'가 아니라 '앱스토어'를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생태계가 되었듯, 구글의 이번 개방은 양자컴퓨터를 '계산 빠른 기계'에서 '인류 난제 해결의 플랫폼'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다.
AI가 정보를 다루는 방식을 혁신했다면,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양자컴퓨터는 물질과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너무 빠르고 어려워서 어지럽다"고 외면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실험실을 탈출한 양자컴퓨터는 묻고 있다. "자, 이 도구로 무엇을 해결해 줄까?" 이제는 우리가 그 질문에 답을 준비해야 할 차례다.
이재호(유튜브 ‘굿모닝 바이블 잉글리쉬’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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