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예수의 성육신은 우리의 신체에도 복음이다 > 칼럼 | KCMUSA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예수의 성육신은 우리의 신체에도 복음이다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목회 > 칼럼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예수의 성육신은 우리의 신체에도 복음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5-12-19 | 조회조회수 : 2,480회

본문

성탄절이 왔습니다. 성탄절은 구세주 예수께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흑암과 고통 속에 있는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께서 몸으로 오셨습니다. 초월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시공간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의 육화(肉化)는 전지, 전능, 편재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낮아짐, 곧 비하(卑下, humiliation)입니다. 

   

성육신, 고난, 십자가, 장사 지냄으로 낮아지신 예수의 비하는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예수의 성육신을 우리가 감사하는 이유는 장차 지실 십자가의 피로써 우리의 죄가 용서되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의 육체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로 우리를 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이를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귀(昇貴, exaltation)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시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미래에 경험할 영광의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비하와 승귀가 곧 우리가 체험할 미래라고 동일시합니다.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새 생명에 참여했다”는 고백입니다(갈 2:20).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나를 위한 성육신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내가 참여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마지막으로 구원받을 우리의 육체를 위한 것”(빌 3:21)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의 신체는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신체의 유죄성(culpability), 유약성(weakness)과 유한성(limitation)을 극복할 것입니다. 

   

예수의 성육신은 우리의 영혼만 아니라 신체에 대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그리스 철학이 말하듯이 “영혼의 감옥”이 아닙니다. 또한 “갈아입는 의복”처럼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물질계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으며,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고치실 뿐 아니라, 재림으로 우리의 신체도 자신과 같은 ‘부활체’(resurrected body)로 바꿀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과 부활체에 대한 소망을 거부한 이단이 초대 교회의 ‘영지주의’(gnosticism)입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는 ‘신체는 저급한 것’이라 생각했고, 영광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요일 4:2-3)이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흑암에서 영광스러운 빛의 나라로 옮기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혼과 육체를 포괄하는 “전인적 구원”(holistic salvation)이며, 세속의 이원론, 곧 영육의 “존재론적 상하관계”(ontological hierarchy)에 도전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양반이 사농공상(士農工商)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와 여자가 하나”(갈 3:28)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철인 왕(philosopher king)과 군인을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토기장이로 비유되고, 포도원과 밭의 농군으로 비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수 출신의 구원자셨고, 바울은 장막 짓는 일을 하면서 선교사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우리의 영혼처럼 몸에 대해서도 복음입니다. 그의 성육신은 인간의 전 존재를 아우르는 구원의 시작이요, 우리 육체의 거룩함을 지키라는 통찰이요, 영혼과 함께 우리의 육체가 영원하다는 소망의 선포입니다. 성육신은 우리 전인의 소망이자 예수의 총체적 사랑의 발현입니다. 그 사랑은 헌심(獻心)이 아닌 헌신(獻身)입니다. ‘헌심’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성탄의 계절에 자신을 비워 성육신하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