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와 찬양의 멘토 다윗의 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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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란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삼후22:2-3)
죄인들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교회에 들어서거나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그들의 삶 속에 죄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 자신이 수치스럽게 여길 때 일지라도 예배에 참석하면 우리의 부도덕함과 사악함을 직시할 수 있게 됩니다. 예배는 또한 받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충족한 은혜를 상기시켜줍니다. 종종 진정한 예배는 진실된 회개를 일으킵니다.
회개를 가져오는 예배의 주제가 사무엘하에서 반복하여 나타납니다. 이 책은 하나님을 깊이사랑하고 그의 종으로서 좀처럼 보기 힘들게 헌신한 다윗의 전기를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불레셋을 격파하며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옴으로써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의 왕국은 검은 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권력의 유혹에 무너져 종종 탐욕스러운 폭군같이 처신하였습니다. 밧세바에 대한 그의 욕정이 그를 사로 잡았고 결국은 간음과 기만과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르렀습니다. 조만간 이러한 죄는 그에게로 돌아와서 다윗 자신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전염병처럼 번져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어떻게 왕으로서 하나님을 계속 섬길 수 있었을까요? 그의 죄가 그의 왕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그가 애써 이루어온 모든 것들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나요? 다윗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며 더군다나 그가 온 마음을 다해 따르겠노라고 단언했던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얼굴을 들고 대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짓고 나단 선지자를 대면한 후에 다윗은 깊은 가책과 참회를 뼈저리게 느끼고 하나님께 용서를 호소했습니다. 또한 그가 어리석게 하나님을 노하게 한 인구조사를 강행하였을 때에는 회개하고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이 크다 (24:14)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지금도 여전히 크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의 용서를 감사함으로 받으십시다.
실망과 낙담
믿음의 부모님들은 늘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그들의 부모와 다른 가치를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이 자녀들이 사춘기에 도달할 무렵에는 그들이 한때 갖고 있던 친근한 부모와의 관계가 지금은 반목과 잔소리 중 하나로 바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과의 관계 속에서 바로 이런 감정을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아마도 압살롬의 대단한 잠재력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속이고 농간을 부리며 반항하며 배반하였습니다. 헛된 왕위찬탈의 시도로 압살롬은 자신의 아버지를 도망가게 하고 나라를 갈라 놓았습니다. 그는 말썽 많은 삶을 살다 헛되게 죽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윗이 자신의 아들로 인하여 깊이 근심하며 괴로워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을 따랐고 그의 축복을 감사했습니다 (삼하22).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도 실망과 낙담을 경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선하시며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하여 그에게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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