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 목회서신] 거룩한 불만족과 자족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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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불만족과 자족의 조화 속에 살았던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거룩한 불만족과 자족은 서로 모순처럼 보입니다. 두 개념 사이에는 분명 긴장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긴장 속에서 오히려 신비롭고도 성숙한 삶을 살아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거룩한 불만족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거룩한 불만족은 상황에 대한 불평이나 환경에 대한 불만이 아닙니다. 거룩한 불만족이란 하나님 앞에서 아직 온전한 성숙에 이르지 못했음을 깨닫는 영적 자각입니다. 제 생각으로,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이미 깊은 경지에 이른 사도였습니다. 누구도 받을 수 없는 계시를 받았고, 복음을 가장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아직도 성장해야 하며, 아직도 더 성숙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아직 온전함에 이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은 그의 겸손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더욱 갈망했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그는 멈출 줄 모르는 선교의 열정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거룩한 불만족을 지닌 사람은 안주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불만족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합니다. 방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G. K.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이 걸리기 쉬운 병 중 하나는 자신이 매우 잘 해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생각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마음입니다.
거룩한 불만족을 지닌 사람은 평생 학습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책을 가져오라”(딤후 4:13)고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선물 중의 하나는 성장 본능입니다. 사람은 성장할 때 기뻐합니다. 배움과 훈련을 통해 우리는 성장합니다. 성장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덤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했습니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삶은 서서히 죽기 시작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저 역시 거룩한 불만족을 품고, 계속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했습니다. 책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그때마다 놀라운 기쁨을 경험합니다.
한편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자족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그는 지속적인 성장을 갈망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는 자족했습니다. 그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 만족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자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닙니다. 아담의 원죄와 함께 태어난 인간의 본성은 불만과 불평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선악과만 금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악과를 바라보며 불만을 품는 순간,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족을 잃은 그들은 결국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습니다. 자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족을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자족이란 외적 조건에서 오는 만족이 아니라, 내적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평안입니다. 자족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자족은 더 이상 바라지 않겠다는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자족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 안에서 누리는 평강입니다. 자족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영성 훈련을 통해 익히는 영적 기술입니다. 바울의 자족은 환경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맺힌 열매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말씀은 자기 확신이나 성공 선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대한 철저한 의존의 고백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기에 만족할 수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장 부요한 사람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만족은 가장 큰 부요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유익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자족은 집착하던 것을 내려놓을 때 경험하는 자유입니다. 자족의 비밀은 감사에 있습니다. 감사가 자족을 낳고, 자족은 더 깊은 감사를 낳습니다. 자족은 아무것도 필요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상태입니다. 거룩한 불만족과 자족의 균형 속에 살아가십시오. 거룩한 불만족을 품고 멈추지 말고 성장하십시오. 동시에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삶을 사시길 빕니다.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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