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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해방 일지'는 선을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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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뉴스M| 작성일2022-04-29 | 조회조회수 : 1,2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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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엿보이는 드라마



    Jtbc드라마(넷플릭스에서도 방영중) ‘나의 해방일지’가 잔잔하게 시청자층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소재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작가 박해영의 솜씨가 놀랍다.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듯하다.


    화려한 맨션에서 벌어지는 초호화층들의 돈놀음, 자식놀음 드라마가 판을 치는 흐름 속에서 중산층의 삶을 소재로 삼은 작가의 시도가 고맙다. 사회 밑바닥층을 소재로 삼았던 김운경 작가가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도둑의 딸’, ‘유나의 거리(2014년)’ 이후 주춤한 것과 달리 박해영 작가는 조금 더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박해영 작가는 선을 매우 강조하는 사람이다. 전작 ‘또 오해영’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두 오해영(서현진, 전혜빈) 중 서현진은 학교 때부터 예쁘고 똑똑한 전혜빈 때문에 늘 손해만 보았다.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서현진은 마침내 선을 넘어 자유를 찾고 전혜빈의 연인이었던 남자와 커플이 된다.


    반면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은 끝까지 자기의 선을 지킨다. 제목만 보면 중년에 접어든 남자와 젊은 여성의 불륜드라마 같지만 ‘나의 아저씨’는 고결한 이야기를 담아낸 드라마다. 여기서 이선균은 가족, 초등학교 동창들로 이루어진 조기 축구회, 그들의 아지트인 조그만 식당 ‘정희네’의 선을 넘지 않는다. 드라마 말미에 이선균이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창업한 것도 선을 넘었다기 보다는 자기 선을 더욱 공고하게 구축하기 위해서 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인 사이였던 오나라와 박해준(겸덕 스님 역)은 박해준의 출가로 사랑에 실패했지만 극 마지막에 가서 그들은 자신들의 선 안에 머물면서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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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마땅한 동아리를 찾지 못한 3명의 직원이 창틀을 선으로 삼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선을 넘는다는 의미는 중의적이다. 다른 이의 삶에 개입할 때 선을 넘었다고도 말하고 장벽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도 선을 넘는다고 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산포라는 곳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1남 2녀로 이루어진 이 가족의 부모는 조그만 가구 제작을 하며 남는 시간에는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큰 밭농사로 살아간다.


    요즘같은 취업난에 자녀 3명은 모두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니면서 매일 아침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선을 넘는다. 이들은 서울생활을 꿈꾸면서도, 돈을 써가면서까지 서울에 방을 얻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전형적인 도농복합의 중산층가정의 따분함이 이들의 생활에 그대로 묻어 난다. 이들은 해방을 꿈꾸지만 해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없다.


    어느날 아버지 공장에 한 일꾼 구씨 (손석구분)가 취직을 하는데 그는 신비에 찬 인물이다. 외양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고급스러운데 하루에 소주 2병씩을 비우며 묵묵히 일만 한다.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의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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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3남매는 꾸겨지듯 하나의 창틀 안에 갇혀 있다.


    주인공격인 막내 딸 김지원과 손석구의 관계가 극을 이끌어 가는 중심 플롯이다. 김지원 배우는 ‘미스터 션사인’에서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의 엄마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 줬었다. 고애신이 아기일 때 일본 유학생으로 있던 그를 잡으로 온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그 장면은 짧게 지나갔지만 긴 여운으로 남았다.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남자친구 때문에 빚을 진 김지원의 자긍심은 바닥을 쳤다. 회사에서도 상사의 잔소리를 참아 내야하고, 불안한 비정규직이다. 게다가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김지원을 빼놓고 발리 여행 계획을 짠다.


    모든 것이 무너저 갈 때쯤 김지원은 손석구에게 자신을 ‘추앙’해서 자기를 가득찬 인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해방’ ‘추앙’ ‘가득 채움’ 등 의미 없는 개념어의 사용은 김지원이 아직도 자신의 진정한 고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 드라마 처럼 이 드라마에서도 선이 강조된다. 사원 복지 차원에서 동아리 활동을 권장하는 회사의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아리 활동을 안 하던 직원 3명은 억지로 동아리 하나를 만들어 서로 마주보지도 못한 채 한 방면을 응시한다. 그 장면은 창틀이라는 선으로 분할된다. 평소 티격내는 3남매지만 지하철 역에서는 한 창문의 틀 안에 꾸겨져 갇혀 있는 장면도 있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 억지로라도 머물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한 미장센(Mise-en-Scèn영화 등에서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배경 따위로 감독이나 작가의 의중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또 오해영’처럼 선을 넘을까? ‘나의 아저씨’처럼 선을 공고히 할까? 극이 이제 중반부에 접어 들어서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이 선 안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서울로 이사가고 사람들과 활발하게 동아리 활동을 하는게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선을 지키는 것으로도 충분한 해방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론을 기대한다.


    구씨도 종영 때까지 지금 이대로처럼 신비에 찬 인물로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도망다니는 조폭, 사업에 실패해서 가족에서 파문당한 재벌 2세 등의 설정은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너무 많아 보아온 상투적 인물이다.


    이문열의 ‘익명의 섬’을 영화화한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1982년)에서 외지인 바보 깨철(안성기 분)이 실은 바보가 아니었다는 것이 관객들에게만 밝혀 졌을 뿐 그에 대한 다른 정보는 영화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선 안에 머무는 것(지금 이 자리)에서 해방이 가능하다는 전개도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기에 작가와 연출에는 큰 부담이 따르겠지만 작가에게 큰 기대를 걸어본다.


    사람들은 자기 만의 선안에 갇혀 있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해 자꾸 선을 넘어 더 큰 곳에 소속되려고 한다. 극중에서 권장하는 동아리 활동도 결국은 사원복지가 아니라 사원관리 차원인 것을 모르지 않을 터, 그들은 선안에 머무는 것이 불안해서 넓은 곳을 기웃거린다. 그것이 정말 해방을 가져 올 수있을까?


    더 넓은 소속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선을 넘어 대형교회를 기웃거린다. ‘문재인 빨갱이’ 윤석열 만세’가 진리처럼 이야기되는 곳이 조금 불편하지만 자녀 교육 시스템을 핑계대며 그곳에 남는다고 항변한다. 거짓말 하지 마시라! 자신들의 두려움을 왜 자녀핑계로 돌리는가?  


    그들은 그러한 이유로 동창회, 동기회에 나가며, 그곳에서 듣기 싫은 이야기를 참아내는 대신 자신만의 무엇(연봉, 자녀 교육 성공)으로 추앙받으려 든다. 자신도 그들도 원치 않는 그 선을 넘는 것이 과연 해방인가?


    어쩌다가 발리 여행에 못끼게 되었냐고 묻는 다른 직원에게 김지원은 아주 심드렁하게 '비키니가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저들이 나를 여행에서 왜 뺐을까를 구차하게 고민하지 않을 만큼 김지원은 이미 성숙하게 해방된 존재다. 다만 '왕따를 당했을 때 상투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그 틀에 박힌 심리상태' 때문에 꼭 불쾌해야 하는지를 갈등하고 있을 뿐이다.  


    선 안에 머물면서 해방하는 드라마의 결말을 꼭 보고 싶다.


    뱀말-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는 어색한 한국어라는 점이 아쉽다. ‘나의’라는 표현은 일본어 와타시노(私の)에서 나온 말로 우리 말로 하면 ‘내 아저씨’, ‘내 해방일지’가 맞다. 일본어 교재 처음에 나오는 가장 쉬운 문장 ‘내 이름은~~’할 때 일본어는 ‘와다시노 나마에'다. 영어에서도 My Name이라고는 하지만 영어에서 주어 서술어의 형태로 쓰는 문장을 일본어에서는 '와다시노'로 시작하는 명사구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형 서준식과 서승을 재일동포 간첩이라는 조작된 사건으로 감옥에 둔 채 미술 순례로서 그 참담한 마음을 풀어냈던 서준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제목에서 이런 표현을 쓴 첫번째 경우가 아닌가 싶다. 한국어가 서툰 재일동포 3세인 작가가 일본어로 글을 쓰고 박이엽이 번역해서 출판된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럴만도 하다. 뒤이어 유흥준이 우리 나라의 문화 유산 답사를 하면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라는 왜색 짙은 제목으로 베스트 셀러를 기록한 것은 문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다.


    김기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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