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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실화라고? 영화 '페르시안 레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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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스M| 작성일2023-01-03 | 조회조회수 : 5,2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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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페르시아어를 가르친 유대인 청년 이야기



1차대전 중 1914년 12월, 독일의 지원을 받은 오스만 투르크군은 석유확보를 위해 페르시아를 침공했다. 왕실에서는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고 문화적으로도 페르시아의 성격이 짙던 오스만 투르크였기에 영국과 가까운 관계인 페르시아를 반드시 되찾아와야 했다. 페르시아 제국의 명망은 많이 사라졌어도 제국을 꿈꾸는 세력들에게 페르시아는 문화적 토대도 탄탄한 제국의 모범이었다.


2차 대전 중 1941년 8월 나치에 대항해 불편한 손을 잡은 영국과 소련 양국은 이란을 침공해 팔레비 왕조의 굴복을 받아내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공관을 폐쇄했다. 독일에게 페르시아(이란)는 1차 대전 때는 오스만과 손을 잡고 되찾아 올 나라였으며 2차 대전 때는 지켜야 할 나라였다.


이란은 아리안에서 나온 말인 것처럼 아리안족 독일과는 같은 조상이다. 나치 독일의 대사관이 있던 시대를 그리워 하는 한 나치 장교의 이름은 코흐다. 그는 독일 바이마르 인근에 있는 부헨발트 수용소의 취사 담당 장교다. 부헨발트 수용소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수용소 입구에 걸려 있는 'Jedem das Seine'때문이다. '각자에게는 각자 대로 주어진 몫(혹은 운명)이 있다'는 라틴어 ‘Suum cuique’의 독일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다 네 팔자다’ 쯤 될까?


대부분의 수용소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가 있었지만 부헨발트에만 이 구호가 있었다. 코흐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에서 식당을 차리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는 페르시아를 모른다. 유대인들이 대다수였던 다른 수용소들과 달리 부헨발트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각종 범죄자, 여호와의 증인, 집시, 독일군 탈영병, 연합군 포로, 반정부 인사 등이 수용되어 있었다. 코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은데 다양한 수감자들 중에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부헨발트에는 가스실이 있었지만 가용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영화 중반 이후에 대형 가스실이 있는 곳으로 유대인들을 이송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헨발트에서 수감자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총살이거나 생체실험 등이었다.


'페르시안 레슨스’(Persian Lessons, 감독 바딤 피얼먼, 2020), 즉 '페르시아어 수업’이라는 영화 이야기다. 2020년 만들어진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최근 개봉했다. 한 무리의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하여 나치는 그들을 한적한 벌판으로 데려가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들판에서 학살이 진행될 때 주인공 질은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라며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송하는 트럭에서 페르시아어로 쓰인 책을 질이 가지고 있던 샌드위치 반 덩어리와 바꾸자던 청년의 요청을 질은 수락한다. 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책이지만 초판본이라 귀해 보여 도망간 주인집에서 들고 나왔다는 청년의 말에 질은 그것은 8계명(도둑질 하지 말라)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그 간절한 청년에게 샌드위치 반쪽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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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총살당하고 페르시아 책 덕분에 질 혼자만이 살아남는다. 독일군 병사들은 코흐가 페르시아어를 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정보에 질을 코흐에게 데려다 준다. 그러나 질은 페르시아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순수 유대인 청년, 벨기에 북부 도시로 유대인들의 금 세공 산업으로 유명한 안트워프 출신의 랍비의 아들이다. 청년에게는 8계명을 거론했지만 질은 지금부터 거짓 증언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겨가며 페르시아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질은 취사반으로 배정받고 수감자 명단을 정리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배식을 하면서, 수감자 명단을 정리하면서 사람들의 이름과 외모에서 페르시아 단어들을 만들어 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감독 브라이언 싱어, 1995)에서 조사 받던 버벌(캐빈 스페이시 분)이 조사실 안의 여러 물건의 상표에서 이름을 만들어 낸 것과 같다.


마침내 종전이 되고 질은 풀려나지만 코흐는 변장을 하고 이란으로 도망치려 한다. 자신을 페르시아 사람이라며 질로부터 배운 엉터리 페르시아어로 독일을 빠져나가려 하지만 당연히 통할 리가 없는 언어, 그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전범 재판소로 넘겨져서 사형당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볼프강 콜하세(Wolfgang Kohlhaase)의 실화 기반 단편 소설 'Erfindung einer Sprache(언어의 발명)'이 원작이다. 정말 있었던 이야기를 극화했다는 말이다. 


필요없는 책을 샌드위치와 바꿔준 일로 목숨을 구했다면 영화 종반에는 진짜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영국 포로를 발견한 나치 병사들이 그 포로를 통해 질의 페르시아어를 시험해 보려 한다. 그 때 역시 음식 도움을 받았던 다른 수감자가 영국 포로를 죽여 버린다. 그 수감자는 질이 페르시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의미다. 음식 한 그릇의 고마움으로 질을 살리기 위해 다른 포로를 죽인 것이다. 그 포로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질에게 엉터리 페르시아어를 배운 코흐는 자신의 불운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페르시아어’로 말할 단계가 되었다. 고비도 없지 않았다. 나무가 페르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라드’라고 대답했는데 코흐는 그건 ‘빵’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냐며 폭행을 시작한다. 맞는 중에도 질은 독일어에도 성(城)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지 않냐고 임기응변한다. 독일어 성(Schloss)에는 성 이외에도 자물쇠라는 뜻이 있다.


영화 속 질은 언어의 창조자이다. 그는 모두 2840의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언어는 기표(예를 들어 나무 하면 언어별로 모두 다르지만)와 기의(나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의미는 모두 같다)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지만 질의 페르시아어에는 기표도 없고 기의도 없다. 기표는 수감자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기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2840개의 단어로 일종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문장까지 생성했다. 알고리즘은 페르시아의 수학자인 알-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파자마, 바자(시장) 등도 외국어에 스며든 페르시아어의 흔적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모두 7,102개의 언어가 있다 (2015년 워싱턴 포스트 자료)고 한다. 그 중 표기할 수 있는 문자는 20여개 채 안된다. 질은 자신은 말만 하고 쓰지도 읽지도 못한다고 위기를 비켜갔다.


기표도 기의도 없는 언어가 사람을 살리기도(질)하고 죽이기도(코흐)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질은 계명은 어겼지만 죽음의 고비에서도 나눈 두 번의 음식이 그를 살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기표와 기의가 맞지 않는 시국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공정’은 동일한 기의를 갖지 못한다. 그 좋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가족을 망가뜨리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기의로 작동한다. ‘자유’가 언론을 억압하고 전쟁을 부르는 주술을 의미하는 기의가 되었다.


기의도 기표도 없는 언어가 질은 살렸지만 코흐는 죽였다. 기의와 기표를 연결시키지 못하는 이들의 운명은 질을 따를 것인가? 코흐를 따를 것인가?


김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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