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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가 일본의 핵폐수 방류를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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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EWS M| 작성일2023-08-11 | 조회조회수 : 6,4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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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한 재앙과 다가올 재앙 – 영화 오펜하이머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리틀 보이)이 떨어진 날이다. 3일 뒤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라 이름붙여진 다른 원자 폭탄을 한 ‘방’ 더 떨어뜨렸다. 재기 불능의 상태가 된 일본은 항복선언을 했다.


일본에는 굴욕적인 날이었지만 그 굴욕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번의 원폭 피해로 민간인 포함 20만명의 목숨을 잃은 점에 집중하면서 히로시마를 평화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고 싶었던 미국은 도쿄 전범재판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을 통해 일본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풀었다.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기는 커녕 천황제를 존속시켰다. 1차 대전 후 독일의 군주제를 폐지시켰던 것과 대비된다.


독일의 아우슈비츠에서 생체실험을 했던 인원 일부에게 정보를 제공받고 그들을 미국에서 보호(감금)했던 ‘사서함 1142, 미국의 비밀 나치 수용소Camp Confidential : Americas Secret Nazis’라는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있다. 일본의 731부대 연구 인력 일부도 이런 ‘혜택’을 받았다. 미국이 일본에게 은택(恩澤)을 베푼 것은 두번의 원폭 공격으로 2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한 자책감도 작동했을 것이다. 다시는 원자폭탄같은 재앙은 없어야 하겠기에 해마다 8월 6일이 되면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핵 시위가 벌어진다.


이러한 시위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일본의 이벤트에 불편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당한 피해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난징대학살, 간토 조선인 대학살 등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숫자와 그밖의 지역에서 일본에게 죽임당한 민간인의 숫자는 원폭 피해자의 숫자를 훨씬 능가하지만 이들을 추모하는 세계적인 연대 집회는 드물다.


미국의 태도도 진정성을 얻기 힘든 게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이 개입한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는 원폭희생자 수를 훨씬 능가한다 (minplusnews.com보도에 따르면 37개 국가에서 2천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본의 원폭 피해를 위로하는 듯 하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의도는 일본을 충직한 반공 감시견으로 두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에 화답한 일본은 자위대를 정규군화 하기 위한 기획에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대한민국은 간과 쓸개를 다 내주면서까지 이 두 나라를 따라가려고 안간힘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시킨 원자탄의 ‘창조자’ 오펜하이머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한국에서는 8월 15일에 개봉된다. 


감독을 맡은 1970년생의 크리스토퍼 놀란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메멘토’(2001년), ‘인섬니아’(2002년), ‘인셉션’(2010년), 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SF영화 ‘인터스텔라’(2014년, 첫번째로 좋아하는 SF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6년 영화 ‘컨택트’), ‘덩케르크’(2017년) 뿐 아니라 4편의 배트맨 작품이 그의 필모그래피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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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첫번째는 오펜하이머(킬리어 머피 분)의 학창시절부터 그의 인생의 중요한 두 여인 진 태틀록과 캐서린 해리슨을 만나고,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과 성공을 다루는 매인 플롯이다.


오펜하이머의 두 여인 모두 공산주의자로 오펜하이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진 태틀록은 공산주의자로 오펜하이머에게 문학과 사회주의를 가르쳐 주었다. 오펜하이머가 진 태틀록과 밀회를 갖는 장면이 세 차례 나오는데 영화 비평가들에 따르면 놀란 감독이 그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다룬 베드신이라고 한다. 태틀록은 성관계 중에 잠시 멈추고 오펜하이머의 서가에서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를 꺼내든다. 여기서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인 "이제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다"라는 유명한 구절을 오펜하이머가 읊는 장면에 힌두교도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캐서린과의 혼인관계 속에서도 오펜하이머가 관계를 끊지 않던 '내연녀' 테틀록은 1944년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를 두고 아직도 외부가 개입되었다는 음모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시기는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 분)의 주도로 맨해튼 프로젝트가 한 창 중이었을 때였기에 공산주의자인 진 태틀록을 통해 정보가 새 나갈 수 가 있었다는게 음모론의 근거다. 영화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던 테틀록의 극단 선택으로 나온다. 


캐서린은 스페인 내전에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미국공산당원의 미망인이었으며 자신 또한 당원이었다. 결혼 후에도 태틀록과의 관계를 끊지 않는 남편을 알콜의 힘으로 참아내면서도 결정적일  때마다 남편을 지킨다.  테틀록의 죽음 소식에 절망한 채 들판에 쓰러져 있던 남편을 찾아내 흔들리지 말고 네 민족(유대인)을 생각하라고 다그친다. 1954년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자로 몰리던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청문위원들이 그녀가 공산당원이었던 것은 맞지 않느냐고 심문할 때 그들에게 한 치도 꿇리지 않는다. 


영화의 두 번째 부분은 1954년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에 관계된 장면이다.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을 보고 오펜하이머는 심한 갈등에 빠지면서 핵확산 방지입장으로 선회한다. 여기서 맨해튼 계획에서 함께 일했고 수소폭탄 제조를 주장하던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분)와 충돌한다. 또한 물리학자가 아니면서 원자력 위원회 의장을 맡은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자 스파이로 몰아 숙청해 버린다. 에드워드 텔러도 오펜하이머에 대한 좋지 않은 증언을 했다. 슈퍼 히어로 아이언 맨을 ‘역임(?)’했고 한국과도 친숙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번 영화에서 지질한 악역을 제대로 해냈다. 그의 아버지는 실제로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관여했었다는 인터뷰가 있다.


세번째 부분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의 청문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1959년 스트로스는 상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본인도 임명 청문회를 거치게 되는데 1954년 당시 오펜하이머를 개인적 원한으로 공격한 것임이 드러나게 되어 망신을 당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의 프레디 머큐리 역할을 맡았던 배우 라미 말렉이 데이비드 힐(과학자 협회 회장)로 나와  청문회에서 스트로스를 궁지로 몰며 오펜하이머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펜하이머'는 놀란 감독의 배우 섭외력에서도 비교를 불허한다. 


각각의 부분은 모두 색감으로 분위기를 전달한다. 첫번째 부분은 총천연색이다. 오펜하이머의 가장 화려했던 시기다. 닐스 보어와의 만남, 두 여인과의 로맨스, 원자탄의 개발, 미국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가 추락하는 시기를 놀란 감독은 색감으로 표현했다. 힌두교에서는 파괴도 창조를 위한 전단계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창조와 파괴, 연애와 실연 모두가 화려한 추억들이다. 1954년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빛이 바랜 색감으로 처리된다. 


1959년 스트로스의 청문회는 흑백이다. 여기서 의아하다. 모두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면 적이 되는 매카시 광풍시절, 나와 적을 나누던 그 시절이 오히려 흑백이 어울릴 것 같으니 말이다. 스토로스 청문회를 통해 오펜하이머는 예전의 영광은 회복못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명예는 회복했고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훈장도 받게 되었으니(안타깝게 케네디의 피살로 훈장은 존슨이 수여했다) 빛 바랜 색깔이 더 어울릴 수 있다.


놀란 감독은 정반대로 해석하는 듯하다. 누가 공산당이며 공산당이라고 해도 그렇게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 옳은지 모한 매카시즘의 시대 또한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하는지 핵확산 방지를 해야 하는지가 시대의 색감을 모호하게 처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 부분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영화의 기본 구성은 맨해튼 계획의 성공에 맞춰지면서 다른 시간대(색감)가 교차 편집된다. 


그러면 왜 루이스 스트로스 청문회는 흑백인가? 물론 스토로스는 상무장관 임명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미국은 모든 세계전쟁에 개입하면서 경찰국가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그들이 하는 것은 무조건 선(백)이 된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전에 노골적으로 개입한다. 이후 계속되는 전쟁에서 미국은 항상 선한 기사였고 상대방은 흑기사였다. 핵확산 방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은 용인되고 북한과 이란의 핵은 용인되지 않는다. 스트로스 청문회가 있던 1959년 1월 1일 미국의 턱 밑에 있던 쿠바에서 공산 혁명이 성공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흑백논리의 시대가 되었다.


극중에 나오는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 "나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는 원자탄의 파괴력만을 상징하는 구절이 아니다. 시간도 창조물인 것처럼 세 시간대의 교차 편집을 통해 놀란 감독은 시간도 파괴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과학자의 애국적 결단(과거)은 미래(1954년 청문회)에서 '소련과의 내통'으로 탈바꿈한다. 오펜하이머를 공산당으로 몰던 텔러의 행위는 미래(1957년 청문회)에서 소환당하며 텔러의 민낯을 드러낸다. 인과론적인 힌두교의 세계관은 과거가 미래의 원인일 수 있다는 철학이 아니다. 미래에 의해 현재가 또는 과거가 뒤바뀔 수 있다는 세계관이다.  


오펜하이머의 주제는 무엇인가? 반핵 탈핵일 수 있지만 영화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도 창작화면으로도 담지 않는다. 오히려 뉴 멕시코 실험장의 실험 장면의 색상이 '화려'하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탄의 가공할 위력에 고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에 승리를 거둔 후 그에게 열광하던 대중들에게서 오펜하이머는 이그러지고 망가진 얼굴로 오버랩된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모습은 그를 공산당으로 몰던 청문위원들이 얼굴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피해자들이나 미국의 환호자들이나 청문회장에서 오펜하이머를 가해하던 자들이나 모두 일그러진 모습이다. 놀란 감독의 진의를 찾아내기 어려운 장면이다.  게다가 오펜하이머의 아내는 고뇌하는 남편에게 세상은 당신을 용서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원자탄의 정당성이나 탈핵보다는 과학자를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던 야만의 시대를 다룬 영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 오펜하이머가 겪는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이 너를 충분히 벌 주고 나면, 그들은 너에게 연어와 감자 샐러드를 주면서 연설을 시킬거야. 훈장도 주고, 네 등을 토닥러리며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모두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한 것이란것만은 기억하고 있어!


만약 오펜하이머가 일본의 핵페수 방류 계획을 보았다면 뭐라 했을끼?


“사람들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절대로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론은 지금 여기까지만 이해 시킬 뿐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 곡학아세하는 학자들은 수치 몇 개와 반감기 3중 수소 등의 어려운 용어로 폐기수가 안전하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다른 ‘이론’에 대해서는 괴담으로 몰아 부치며 매카시즘처럼 붉은 색을 덧입힌다. 오펜하이머를 공산당으로 몰던 그 논리가 아직도 작동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오펜하이머의 말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겨우 여기까지다. 폐기수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누구도 장담못할 상황에서 바다에 버리는 비윤리적 행위를 한미일이 용인하고, EU국가들이 용인하고 있다. 미래는 이들의 용인을 뭐라고 판단할까?  


오펜하이머 선생님! 대단히 조심스런 말씀이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폐허로 만든 그 일에 대해 ‘그 곳’에서라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에서도 고뇌하는 모습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기는 했습니다. 선생님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지 핵무기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으니까요. 더군다나 이제 일본은 더이상 원폭 피해국이 아닙니다. 오염수를 방류함으로써 일본은 가해국의 지위에 올라(?) 섰습니다.


김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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