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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여행 [조명환의 추억으로 가는 여행(30)]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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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크리스천위클리| 작성일2023-12-11 | 조회조회수 : 2,6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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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유대인 최고의 성지다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이 한 달을 넘겼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이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최대도시 ‘가자시티’를 포위해서 이제 “하마스는 독 안에 든 생쥐”라고 말할지 몰라도 전선은 이미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호락호락 하마스의 여론전에 말려들어 가자를 포기하고 되돌아설 것 같은가?


    아브라함으로부터 발로된 이스라엘의 긴 생존 여정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의 리더십으로 우선 출애굽에 성공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최대한 넓혀 나갔다. 그러다가 국운이 쇠하여 이번엔 바빌론에게 패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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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될때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지만 일부 벽을 남겨놓아 로마의 위대함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그 남겨진 성전 벽 일부가 통곡의 벽이 되었다


    그 포로에서 해방되어 다시 약속의 땅에 돌아왔건만 얼마후 이번에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또 다시 흩어져야 했다. AD 70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20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1948년에 드디어 이스라엘이 그 약속의 땅에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다. 한 민족이 망해가지고 흩어진 후 2000년 만에 다시 뭉쳐 나라를 건설한 역사는 유대민족이 유일하다고 한다. 거기엔 시오니즘이란 민족운동의 거대한 물결이 큰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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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서 위로 쌓여져 있는 돌들은 지상에서  7칸까지의 돌이 헤롯 성전의 돌들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시던 당시에 존재했던 돌들이다. 그 위로 큰 돌 네 칸은 맘루크 시대에, 그리고 그 위로 있는 작은 벽돌들은 오스만 트루크 시대에 다시 놓여진 것들이다.


    2천년 동안 떠돌이 민족으로 유럽과 러시아,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그들은 얼마나 조국이 그리웠을까? 로마 시대를 지나 비잔틴 시대가 도래하자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 날 딱 하루만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무너져 내린 옛 예루살렘 성전의 한 모퉁이를 찾아갈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그 무너진 벽 앞에서 유대인들은 흐느껴 울며 통곡했다. 나라없는 민족의 서러움이었다. 지구촌의 고아처럼 떠돌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통곡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바로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이스라엘 땅이다. 그래서 지금도 팔레스타인과 땅을 놓고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이 유대민족에게 주신 땅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예루살렘이 가장 중요하고 예루살렘 안에서는 옛 헤롯 성전(제2성전을 개축한 성전, 혹은 제3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쪽벽(The Western Wall)을 가장 중시 여긴다. 흔히 통곡의 벽이라 부르지만 정식 이름은 ‘더 웨스턴 월’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통곡의 벽 다음으로 유대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곳이 로마군에 맞서 결사항전을 벌이다가 집단자결로 유대인의 충절을 지킨 ‘마사다 요새’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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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곡의 벽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손을 닦아야 한다. 유대인들의 정결 예법을 따라야 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 성전은 바빌론 침략 때 파괴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같은 자리에 건축된 것이 제2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른다.


    그 후 헤롯왕이 이스라엘 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2성전을 크게 재건축했는데 이를 헤롯성전이라고 부른다. 헤롯 성전은 제2성전을 증축했을 뿐이므로 제3성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통곡의 벽’은 BC 20년 경 헤롯 왕에 의해 지어진 제2성전 벽의 일부분이다. AD 70년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할 때 로마군의 위대함을 후대에 보여주기 위해 성전의 서쪽 벽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 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성전 벽은 60미터 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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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닦는 것은 물론이고  남자의 경우 머리에 키파를 써야 한다. 키파는 현장에서 무료로 준다. 그리고 나올때 두고 나오면 된다. 키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표현이다. 필자도 키파를 쓰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드렸다 


    로마 시대를 지나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서, 로마 시대와 달리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사는 유대인들에게 1년에 한 번 예루살렘에 올라와 이 벽 앞에서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당시 유대인 순례객들은 이 벽을 붙잡고 가나안 땅과 가족과 성전을 잃은 것에 대해 옛 성전 방향을 향해 통곡하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인 1948년엔 성전 벽이 있는 지역은 요르단에 속해 있었으나,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되찾았고, 지금은 유대인 지배하에 들어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성지가 되었다. 통곡의벽 너머에는 황금으로 입혀진 돔으로 유명한 모슬렘 사원 ‘황금 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있다. 사원 안에는 크고 납작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모리아 산의 제단자리라고 한다. 또한,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을 때 중심으로 삼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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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절한 소원을 쓴 기도쪽지들이 벽 틈에 꼼꼼히 끼어 있다 


    통곡의 벽의 돌들은 이스라엘 땅의 암반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암반을 정으로 쪼아 네모 반듯하게 큰 돌들을 떠내고, 그것들을 도르래 역할을 하는 수레에 굵은 밧줄로 묶은 다음 여러 마리의 소가 끌어서 옮겨 하나하나 쌓은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통곡의 벽은 성전 벽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서서 기도하는 성전 벽 바닥 밑에는 헤롯 시대에 있었던 성전 벽의 원래 높이가 그대로 숨겨져 있다. 벽의 바닥 밑으로 쌓여져 있는 돌들은 17칸이고, 지상으로는 7칸까지의 돌이 헤롯 성전의 돌들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시던 당시에 존재했던 돌들이다. 그 위로 큰 돌 네 칸은 맘루크 시대에, 그리고 그 위로 있는 작은 벽돌들은 오스만 트루크 시대에 다시 놓여진 것들이다.


    유대인의 성지인 만큼 복장 규정을 지켜야 들어갈 수 있다. 반바지, 민소매 차림은 들어갈 수 없다. 남자는 모자를 써야 하는데, 빌려주는 곳이 있다. 입구에서 종이로 된 ‘키파’를 담은 상자가 있는데, 이를 쓰고 들어간 다음 나올 때 다시 상자에 두고 나오면 된다. 사진 촬영은 어느 정도 허용되지만, 안되는 날도 있다. 오늘날엔 남녀가 따로 입장하도록 분리대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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